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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비오는 날에

mahler2 2007. 8. 3. 16:54


오늘은 제게 그림을 좋아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한 작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한 9년 전 원래 음악(미학)을 공부해보려고 이 수업 저 수업에 기웃거리다 몇 개 안되는 그 수업들에 실망하고 어떻게 해야할것인가를 고민하던 중에 미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사실 어떤 계획이 있었다기보다는 처음엔 무작정 가게 됐습니다.

한 몇 달간 필라델피아에 적을 두고 있을 때,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가 외로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근처에서 열리는 음악회 가는 것과 주변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어쨌든 그래서인지 매주 일요일 오전에는 항상 Philadelphia Museum of Art에서 시간을 때웠습니다(일요일 오전은 공짜^^;).

처음 그 곳을 찾았을 때 제가 가진 미술에 대한 지식 수준은 고작해야 정식 미술사가 아닌, 관심분야였더 미학이나 철학관련 수업시간에서 들은 미학사의 흐름 속에서 이론적으로 알고있는 시대 구분과 한 시대를 대표한 작가들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특히나 작품 자체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죠.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무지무지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었습니다. 미술관에 들어와 19세기와 인상주의 정도의 시대의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한 작품 앞에서 서선 전율을 느끼고는 거의 10여분간 멍한 표정으로 그 앞에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 대략 가로 90, 세로 70 정도의 그리 크지 않던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에 붙여진 제목은 Rain (원제 : Wheat field in the rain)이였습니다.

van Gogh가 1889년 생레미의 정신 요양원에 있던 시절에 그린 그림으로 창살이 처진 그의 방안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비오는 밀밭을 그린 것이었는데 많이들 아시다시피 당시 그는 밀밭 (wheat field)을 소재로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 특유의 임파스토 기법으로 두꺼운 선을 이용하여 평범한 밀밭 그림 위에 비를 표현하고 있는 어찌보면 단순한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게는 왠지 모르게 힘들고 지친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의 진심같은 걸 느꼈던 걸까요? --- 예술가들의 공동생활을 꿈꾸었던 이상의 좌절, 고갱과의 결별, 격한 감정 속에서 자른 귀, 계속되는 아를 사람들의 비난, 어쩔 수 없이 떠나올 수 밖에 없던 그의 노란 집 ---

남들의 이상스럽다는 시선을 받으며 창피하지만 눈물까지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때의 감동은 너무도 생생합니다. 그 때 느꼈어요. 아무리 이론과 철학적 사상이 중요해도 그 모든 것은 진정한 예술에 대한 사랑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그렇게도 이론에 매달리고 사상과 철학만을 중요시했던 내 자신이 그 앞에서는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품 자체를 무시하고 단지 그 배경과 그 속에 있는 사상만을 중시하고 그 속에 무언가 담고 있는 것만이 가치있다고 여겼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그렇게 그렇게 하염없이 서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정말 그림을 보고 싶었습니다. 내 스스로의 느낌만이 아니라 화가와 함께 그의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읽는 코드를 공부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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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가끔 그때가 생각납니다.

Bach가 제게 음악을 알려주고 Mahler가 날 이끌었듯이 van Gogh는 절 그림 속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그런건 취미로도 할 수 있는거자나!'

였는데... 어느새 취미가 되어 버렸네요.

그래도 가끔씩 그때를 생각하면... 제 인생에 그만큼 열정적이였던 적은 없었던거 같습니다.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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