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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s of being wild

백만번 산 고양이 본문

영화/드라마/만화

백만번 산 고양이

mahler2 2009. 1. 13. 11:38


예전에 열심히 보던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카우보이비밥... 첫 느낌은... '머 이런 촌스런 머리를 가진 주인공이 다있냐-_-'였습니다...

그러다 한두편 보다보니 완전 빠져버렸고... 지금도 스파이크, 페이 발렌타인,  제트, 에드, 아인 등등은 너무도 생생한 캐릭터들입니다...

거기다 요코 칸노의 그 수많은 OST들...
누군가 지금도 애니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첫손가락에 꼽는 작품입니다...

기본적으로 카우보이비밥의 플롯은 이중구조입니다...
하나의 메인라인(스파이크, 줄리아, 비셔스로 이어지는)이 있고 중간중간에 사소한 에피소드를 끼워 넣는 방식입니다...
아마 일본 애니메이션들에서 가장 많이 차용하는 구조일듯 합니다...

그 수많은 주옥같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마 마지막 에피소드인거 같습니다...

오랫동안 사랑했던 연인(줄리아)의 죽음 이후 배로 돌아와 스파이크가 제트에게 들려주는 동화이야기...
바로 이 글의 제목인 사노 요코가 지은 동화입니다...

그가 사지로 떠나면서 제트에게 마지막으로 얘기해준 동화 이야기...

얘기를 다 들려준 후 스파이크는 제트에게 말하죠...

'난 이 이야기가 싫어요'
'왜?'
'난 고양이를 싫어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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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내용의 삽화는 사노 요코님의 그림을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정말 멋진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임금님을 싫어했습니다.
임금님은 싸움 솜씨가 뛰어나 늘 전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멋진 바구니에 담아 전쟁터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이 한창인데도 고양이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을 그만두고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의 정원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뱃사공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바다를 싫어했습니다.
뱃사공은 온 세계의 바다와 온 세계의 항구로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날 고양이는 배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고양이는 헤엄칠 줄을 몰랐습니다.
뱃사공이 서둘러 그물로 건져 올렸지만 고양이는 바닷물에 푹 젖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뱃사공은 젖은 걸레 같은 고양이를 안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머나 먼 항구 마을의 공원 나무 아래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서커스 따위는 싫었습니다.
마술사는 날마다 고양이를 상자 속에 집어놓고 톱으로 쓱싹쓱싹 상자의 반을 잘랐습니다.
어느 날 마술사는 실수로 고양이를 정말 반으로 쓱싹쓱싹 자르고 말았습니다.
마술사는 반으로 잘린 고양이를 두 손에 들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습니다.
마술사는 서커스단의 천막뒤쪽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도둑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도둑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도둑은 고양이와 함께 어두컴컴한 동네를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다녔습니다.
도둑은 개가 있는 집에만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개가 고양이를 보고 짖는 동안에 도둑은 금고를 털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개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도둑은 훔친 다이아몬드와 고양이를 껴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면서 어두운 밤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좁다란 뜰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할머니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고양이를 껴안고 조그만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양이는 온종일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꼬박꼬박 졸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고양이는 나이가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쪼글쪼글한 할머니는 쪼글쪼글하게 죽은 고양이를 껴안고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정원 나무 아래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아이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여자 아이는 고양이를 업기도 하고 꼭 껴안고 자기도 했습니다.
울 때는 고양이의 등에다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여자 아이의 등에서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고 말았습니다.
머리가 덜렁거리는 고양이를 안고 여자 아이는 온종일 울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뜰 나무 아래에다 묻었습니다.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습니다.
길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쨌든 고양이는 멋진 얼룩 고양이였으므로, 멋진 얼룩무늬 길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암고양이들은 모두들 그 고양이의 신부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커다란 생선을 선물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먹음직스런 쥐를 갖다 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진귀한 개다래나무를 선물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멋진 얼룩무늬를 핥아 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말했습니다.
"나는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고양이는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했던 것이죠.




그런데 딱 한 마리, 고양이를 본 척도 하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으로 다가가,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라고 말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그러니."
라고만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자기 자신을 가장 좋아했으니까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너 아직 한 번도 죽어 보지 못했지?"
하얀 고양이는
"그래." 라고만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앞에서 빙그르르,
공중 돌기를 세번 하고서 말했습니다.
"나 서커스단에 있었던 적도 있다고."
하얀 고양이는
"그래."
라고만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난 백만 번이나...."
하고 말을 꺼냈다가 고양이는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라고 하얀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으응"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 늘 붙어 있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귀여운 아기고양이를 많이많이 낳았습니다.
고양이는 이제
"난, 백만 번이나....."
라고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아기고양이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할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아기고양이들이 자라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녀석들, 아주 훌륭한 도둑고양이가 되었군."
이라고 고양이는 만족스럽게 말했습니다.
"네에"
라고 하얀 고양이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야옹야옹 부드럽게 울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조금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한층 부드럽게 야옹야옹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아침이 되고 또 밤이 되고, 어느 날 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이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두번 다시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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